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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독고차 2016. 3. 26. 23:04
어느날 갑자기 외계에서 초지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주 멀리서 온 그들의 문명은 현 인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운명은 그들의 손에 맡겨질 것이다. 지난 몇 만년간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면서 수많은 종이 사라졌듯이, 인류의 운명도 사라진 수많은 종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고,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는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 소설 속 오버로드들에 의해 질서가 유지된다면, 인간의 삶은 좀 더 나아지게 될까? 현명한 누군가가 절대적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오버로드의 지배를 받게 된 인간의 삶은 더이상의 전쟁도 기아도 범죄도 사라진, 인류가 최초로 맞게 된 유토피아의 세계로 그려진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안해도 되고 기본적인 의식주가 제공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또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유토피아처럼 그려지지만, 그것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 인류에게는 무언가를 이룩하고자 하는 동기도 사라지게 되었다. 오버로드가 이룩한 기술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데서 오는 허탈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그들 나름의 문명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오버로드의 지배를 받기를 거부하고 그들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려고 하지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결국 함몰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인류는 그들의 조종에 의해 새로운 존재로 진화하게 된다. 그 새로운 존재는 개개인의 자의식을 상실한 그저 새로운 개체 집단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개인의 자의식이 사라진 하나의 종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진화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존재는 인간이 절대 이룩할 수 없었던 우주 먼 곳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존재에게 지배를 받는 인류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습은 과거에도 만연했고 지금도 없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같은 종이 아닌 완전히 다른 종으로부터 절대적인 힘의 차이로 지배를 받는다면, 과연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요즘 부쩍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도 그렇고, 우리가 예측하기 힘들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시대에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유년기의 끝 - 6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시공사

[어느날 갑자기 외계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1950년대에 나온 책이고 수많은 영화와 책에서 접해봤을 이야기지만, 항상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