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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독고차 2018. 6. 13. 07:37

매달 최인아 책방에서 선정된 책을 한권씩 받아보고 있는데, 별로 관심없는 분야라서 읽어보지 않았을 책들도 이렇게 강제로 훑어보게 된다. 다달이 배달되어오는 책을 펼쳐보면서 나의 관심사를 조금씩 확장해갈 수 있고, 그래서 일상에 조금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 같아서, 꽤 괜찮은 서비스인 것 같다. 지금까지 6번 정도 책을 받아봤는데, 재미있게 읽었던 경우가 절반 정도이다.

미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클림트의 생애나 그의 작품에 대해서 궁금해하거나 호기심을 느낀적이 거의 없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키스'라는 작품을 예사로 봤던 것이 전부다. 이 책은 클림트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100여년 전의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에 대해서 얇게나마 간접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클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클림트가 평생 나고 자란 빈이라는 도시와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는데, 클림트가 활동할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여전히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였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민족주의가 싹트고, 사회, 경제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오스트리아는 여전히 과거의 체제로부터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는 민족주의가 싹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민들을 철저히 통제해왔었다. 그리고 숨막히는 통제 아래에 빈 사람들은 독립이나 혁명의 시도보다는 정치적 무관심과 예술 세계로의 탐닉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당시 19세기 빈의 보수적이고 유미주의적인 분위기는 클림트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클림트는 젊은 시절 '예술가 컴퍼니' 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빈의 도시 재정비 사업과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마카르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기회가 빨리 찾아왔고 그 일들을 훌륭하게 마무리지음으로써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클림트의 화풍이 나오기 전이었다. 아직까지는 마카르트의 그림과 구분이 안될 정도의 사실적인 표현의 역사화 작품을 그렸다. 

클림트는 예술가 컴퍼니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와 결별하고, 4~5년을 대외적인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빈분리파를 결성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빈의 보수적인 예술 형식을 답습하는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고, 유럽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바람에 저멀리 동떨어져있는 빈의 분위기에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클림트는 빈대학 본부 건물에 천장화를 의뢰받는데, 문화교육부 당국자들은 지금껏 클림트 그려왔던 역사화풍의 그림을 기대했지만, 완전히 바뀐 클림트 그림의 스타일에 실망하고 반발하게 된다. 사실 그림의 화풍이 바뀐 것보다는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에 더 불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문의 위대함을 찬양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나타내는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고, 자신의 분야에서 탄탄대로가 팔쳐져있던 클림트는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다. 자신의 예술 세계를 적극적으로 극복해내려한 것이다. 

클림트는 이탈리아를 방문해서, 라벤나 산비탈레 성당에 그려진 모자이크를 보고 깊은 감흥을 받는다. 당시 프랑스 및 유럽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예술 사조에는 무관심했다. 오히려 먼 과거로 거슬러가서 평면적으로 표현되는 회화 기법과 모자이크, 동양의 먼 이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그의 손을 거치면서 클림트 만의 화풍으로 재창조된다.

키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황금으로 장식된 클림트 그림의 진수를 보여준다. 
키스는 클림트 본인의 연인인 '에밀리'와 결혼으로 결실을 맺을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평이 유력하다.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클림트였지만, 그래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연인에 대한 열망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에밀리는 클림트에게 뮤즈였다. 당시에도 드문 커리어 우먼이었던 에밀리는 상당히 자립적이고 진보적이었다. 그래서 결혼의 속박에 결코 구속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클림프와는 평생 연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끝내 결혼은 하지 않는다. 당시 빈 사교계에서는 유부남, 유부녀 간의 불륜도 많았고, 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였다고 한다. 예술이 일상이었던 이들에겐 사회적인 시선과 지켜야할 것들의 억압보다는 개개인의 감정과 본능에 더 충실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솔직했고, 거침이 없었으리라.

아델레 블로후-바우어의 초상화는 클림트가 자주 드나들었던 살롱 주인의 아내를 그린 것이다. 부유한 유대인이었던 살롱의 주인은 아내 그림을 클림트에게 청탁했었는데, 황금과 다양한 문양을 가득채우고 있는 클림트 그림 기법의 정수를 모두 담고 있다. 그가 이 그림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현재 미국의 한 전시관에 있는데, 나치 하에 빼았겼던 그림을 미국으로 망명한 클림트 조카 중 한명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승소해서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영화 '우먼 인 골드'로도 유명하다.

클림트는 여러 방면의 지식을 활용해서 그림에 적용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학, 생물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고, 특히 동양의 미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그림의 여러 문양들에서 그러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클림트의 그림은 크게 3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적인 표현의 역사화에서 시작해, 황금빛으로 가득한 평면적인 양식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황금을 서서히 배제하고 동양 특히, 일본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으로 녹여내게 된다. 또한, 빈분리파를 떠난 후에는 빈공방에서 회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내 장식과 옷, 가구 등 실생활과 접목된 예술 작품도 선보이게 된다.
클림트는 항상 변화를 추구하였다. 이미 유명하고 성공의 자리에 올라있었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과거의 방식으로 비슷한 그림만 재생산하는 순간, 능력있는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행위를 하는 순간 예술가로써의 생명력을 잃는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책을 보고, 바로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를 찾아봤다. 그리고 서양 미술에 대해서도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는 매일 지나쳐다니는 회사 1층 로비의 미술 전시 공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잘 몰랐던 분야로도 관심의 폭을 살짝 넓혀가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


클림트 - 8점
전원경 지음/arte(아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