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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배우기

단단한 영어공부

by 독고차 2020. 4. 28.

당장 취업이나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나에게 어떤 태도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끔 하는 책이었다. 영어 회화 수업을 하게 되면 으레 몇번이나 반복했었던 자기소개를 하고, 그 다음 이어지는 질문은 왜 영어를 배우려고 하느냐이다. 그런 질문이 이어질 떄마다, 바로 눈 앞의 목표가 없는 나는 대충 외국 사람들과 어려움없이 의사소통을 하고 싶고, 미드를 볼 때 자막 없이 보고 싶다고 하곤 했었다. 눈 앞의 목표가 없던 나는 영어 학습이 더딜 수 밖에 없었고, 도통 늘지 않는 실력에 적잔히 스트레스가 있었다. 시험은 없었지만, 스트레스가 있었던 이유는 나 역시 영어를 정복해야 할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영어는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세계를, 산과 바다를 소유할 수 없듯 언어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누림'이 학습의 중심이 된다면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세계는 언어로 충만하고 우리는 그것을 잘 누리면 되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언어와 내가 엮이는 방식, 내가 그 언어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 그 언어가 나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또한 학습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는데, 영어에 대한 학습 적용에 그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도, 수학을 배울 때도, 어떤 무엇을 배울 때도 적용할 수 있는 기본 방법이다. 보통 무엇을 배운다고 하면 관련 책이나 인터넷의 글을 찾는다. 그리고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보통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이것을 기반으로 가지를 쳐야 한다. 배운것을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정리한다든지, 실제로 누군가를 가르쳐 본다든지, 또는 이를 활용하여 무언가를 만들거나 해보는 것이다.
보통은 교재에서 제시하는 단어와 문장을 최종 학습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교재를 종착지로 삼는다면 교재의 잠재력을 절반도 활용할 수 없습니다. 교재에 등장하는 어휘, 문장, 문법 등의 요소를 학습의 목적지가 아닌 출발점으로 삼을 때 영어 공부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제시된 내용의 암기를 넘어 내 생각과 감정, 의견과 바람을 표현하는 재료로 삼는 겁니다. 교재 개발자가 전해 준 언어는 '정확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내' 것은 아닙니다.

영어를 배울 때, 또 하나의 가장 큰 허들은 두려움이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목구멍 속에서만 맴돌다 삼켜진다.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 상대방이 내 말을 못알아들으면 어떡하지, 특히나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왠지 그가 내 영어 실력을 평가할 것 같은 두려움에 영어를 사용하기 더 망설여진다. 이 부분에서는 방법이 없다. 그냥 철판깔고 부딪혀 보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한발 더 나아갈 수 없다.
정확은 부정확의 축적이다.
'정확성이 발달하려면 부정확을 용인하고, 부정확하게 느껴지더라도 용기있게 말하고, 나아가 부족한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미드로 영어공부를 하는 과정은 이렇다. 처음에는 자막없이 본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겠어서, 영어 자막을 켜고 본다. 그래도 100%이해가 안간다. 한영자막으로 공부하면 효율적일 것 같아서, 한참을 검색해서 구한다. 하지만 한영 자막을 보다 보면, 영어와 한글과 영상을 넘나들어 보기가 거추장스럽다. 결국엔 한글 자막만 켜고, '미드'만 즐긴다. 책에서 추천하는 미드 공부법은 극 중의 인물을 선택하여 같이 연기하며 즐기는 방법이다. 단순히 스크립트를 보고 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기를 해본다니,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한번 해볼만 하겠다 싶었다. 혹시 나의 숨겨져있던 연기 재능을 발견할지도..

결국 영어는 네이티브와 같이 닿을 수 없는 허상을 쫓아 정복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계속 꺼내어 놀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영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네이티브라는 환상의 고지를 정복하려는 등반가가 아니라, 이 동네 저동네로 난 작은 골목길을 순례하며 진짜 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여행자였다면 어땠을까요. ...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의 그늘에서 슬퍼하는 나 자신을 방치했을까요?
세계를 탐험하는 배우'로 저를 이끌어 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좀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때때로 듭니다. 그랬다면 허깨비 같은 네이티브를 좇기보다는 정성을 다해 누군가 되어 보는 '배우'로서 공부할 수 있었겠지요.

영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천천히, 꾸준히 즐길 수 있도록 영어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해주는 책이었다. 추천.

단단한 영어공부 - 8점
김성우 지음/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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