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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살고 있는데, 눈에 띄는 강연을 발견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BOOK & LIFE 특집 강연회'.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어서 좋은 점 중에 한가지를 꼽으라면 이런 강연과 다양한 문화적인 혜택으로 내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자극들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강연 공지를 봤을 때, 강연자가 여섯분이나 되는데, 전체 스케줄은 두시간 정도로 예정되어 있었다. 두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여섯분이서 어떻게 강연을 이끌어 가실지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왔는데, 이건 외국의 TED와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각자 15분의 시간이 주어졌고, 한분씩 나오셔서 이 짧은 시간안에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바로 목동까지 가야했다. 저녁먹을 시간도 없이, 달려갔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 지각을 했다. 그리고 어제 잠을 설친 상태에서 하루종일 밥을 못먹었더니, 강연 막바지에는 한계가 왔다. 결국 한기호님과 천상현님의 강연 때는 계속 멍 때리면서 앞만 보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은 있었다. 강연을 듣고, 내 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다. 2주에 한번씩 목동 KT 채임버홀에서 다른 강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꾸준히 참석해야겠다.


 



<독서를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나의 문제가 어떻게 만나는가에 대한 생각이 항상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한권 한권의 책은 나의 태도를 만들게 된다.
책의 운명은 언제 결정되는가? 책의 운명이 결정되는 때는 저자가 자신의 원고 마지막 문장을 끝마쳤을 때도 아니고, 출판이 되어 서점에서 판매가 시작되었을 때도 아니다. 그것은 책이 서점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 무심코 책을 들고 훑어보다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를 만났을 때이다. 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지금의 내 직업, 내가 나온 학교, 내가 가지고 있는 스펙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의 내가 책을 들었을 때, 책을 통해 나의 태도가 만들어지고, 변화를 만들어 나갈 때,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에 질문을 던질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책이란, 이렇게 좋은 책을 이제 알았구나,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독서를 통해 무언가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어렴풋이나마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한 것들이 매우 즐겁다. 
나에게 태도의 변화를 갖게 해준 책은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이다. 주말에 서점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 책을 들고 가볍게 읽어보다가, 집에 가져가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책이었다.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책들처럼, 이렇게 살라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느낌보다는 책의 주인공이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지, 1년을 채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대학시절 아무런 고민없이 사회로 떠밀려 나와서, 요즘 부쩍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길인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독서를 통해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책을 읽은 후에는, 꾸준히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글을 쓰다보니,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고, 글쓰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일도 생기게 되었다. 나에게 나름 큰 변화들이 최근 몇 달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책을 읽을수록,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하나 둘 늘어간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요즘 설레임을 안고 살아간다.





<독서를 왜 해야 하는가? 독서를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하는 이야기, 즉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봐야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공감, 소통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요즘 기업에서는 독서경영이 화두이다. 이제는 직장인에게 독서는 필수이다. 독서를 통해 급변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읽기를 통해서, 자신의 전문분야 뿐만 아니라, A분야와 B분야도 알아야 하고, 각각의 분야 사이에 있는 부분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통섭이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 골방에 앉아 독서를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공유해야 한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 그것은 서로의 견해를 확인하고, 차이를 발견하고 함께 가야할 방향을 고민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는냐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개인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세지는 다르다. 따라서 혼자 읽고 혼자 감동받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해야한다. 소셜리딩의 시대이다.>

요즘 하나의 고전을 정해서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평생 가까이 할 수 없을 것 같던 인문학을 읽으려 하니,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다. 때때로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나름 성장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강연장에 들어와서 안내책자를 받고 매우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강연을 들으러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읽은 책이 '지식인의 서재'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통해 방금 전까지 정병규님의 서재를 둘러보고 왔다. 정병규님은 맹목적인 독서의 강요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책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해서도 안되고, 책이라는 것은 그 것 자체로 근본적인 매력이 있어서 삶을 영위하는 안목이 생기면 책이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강연장에서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책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주로 해주셨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지금 껏 정보, 예술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해왔던 책이 디지털 시대에 와서 그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여러 다양한 기기와 매체들이 책의 자리를 대신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위기 의식 속에서 책의 새로운 가치를 더 생각할 수 있는데, 책은 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책과 e북을 비교해보면, 책과 e북은 내용은 같을지라도, 내용을 읽기 위해 드는 에너지가 다르다는 것. e북은 디바이스와 전기가 없으면 볼 수 없지만 책은 손만 있으면 볼수 있다는 것. 지금 껏 책은 읽고, 보는 것인 시각의 대상이었는데, 촉각의 대상으로까지 확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손과 만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 책의 세계는 촉각적인 세계의 새로운 부활이 될 것이라고 한다.>

나는 e북을 본적이 없다. e북을 볼 수 있는 적당한 디바이스도 없고, 왠지 책은 손으로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며 읽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정병규님의 말씀대로 책은 책으로써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책이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e북과 책,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을 뿐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철학의 시대'를 통해, 강신주님을 접해본 경험이 있다. 그의 책은 나에게 어려웠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을 읽는데, 책에서 소개하는 시가 도통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몇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자는 다양한 시를 소개하면서, 유명한 철학자들의 말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펼쳐가는데 그런 과정이 놀라웠다.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왜 내가 시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껏, 나이를 똥구녕으로 쳐먹었기 때문이다. 강연의 주제가 되는 단독성이 나에게 완벽하게 부재되어 있었다. 나는 단독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부모가 바라는 삶, 사회가 요구하는 삶, 권력에 순응하는 삶이 었고, 내가 상대로부터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차 있었다. 온전하게 나만의 삶, 나 자신만이 살 수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온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단독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단독적인 삶을 살지 못한 내가 단독적이 삶을 산 그들의 작품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삶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살면서 수많은 좌절과 아픔을 경험하고, 질투심,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겪으면서, 고통을 내 안에 쌓아가며 살아간다. 더 고통스러워야 된다. 모든 고통을 피해가지 말고, 온몸으로 받고 느끼면서 살라고 한다. 내 고통의 깊이와 넓이가 더 해질 수록, 내 주위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사람들을 품어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이 깨지고, 다치고, 아파해야 한다. 나는 고통과는 거리가 먼, 참 무던한 삶을 살아왔다. 큰 실패도 없었고, 큰 아픔도 없었고, 큰 고통도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다보니,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살고 있다. 별 생각없이,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온실 속에서 커온 내가,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도 없었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없었으며, 단독적인 내 삶을 살 수도 없었다.
무서워 하지말라고 한다. 자본에, 사회에, 나를 억압하고 있는 모든 것에 무서워 하지 말라고 한다. 온전한 내 삶을 살기에도,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없는 단독적인 내 삶을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니라고 한다. 정신적으로 어린 아이는 몸은 어른일지라도,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단독적인 삶을 살지 못했고, 또 그로 인한 아픔도 겪지 못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아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인문학은 영원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나도 인문학이 안 읽힌다. 살면서 고통도 없었다. 삶이 무던하게 흘러갔다. 그의 말대로 나는 나이를 똥구녕으로 처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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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센

네팔이야기/Memory 2012/01/21 22:09 posted by 독고차

네팔의 유명한 여행지라고 한다면, 히말라야, 포카라, 치트완 국립공원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곳 탄센은 여행 책에서도 비중있게 소개되어 있지는 않은 곳이었는데, 부처의 탄생지라는 룸비니에 갔다가 즉흥적으로 다음 여행 장소로 정해서 가게 되었다.
탄센은 예전 팔파왕국의 수도라고 한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는 세력이 매우 강성해서 포카라,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가 1806년에 네팔왕국(카트만두)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 산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탄센'이다>


<탄센에서 내려오는 길>
 
탄센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하다. 버스를 타고 산을 구비구비 넘어서 한참을 가야 되는데, 도중에 산사태로 인해 길이 끊어진 곳도 많았고, 낭떠러지 옆을 버스가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네팔에서 차를 타면 습관적으로 버스 안이 아니라 지붕을 이용하곤 했다. 날씨가 너무 더운 탓도 있었고, 네팔의 버스는 너무 좁아서 성인 남자들이 타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현지에서도 위험하다고 제지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몸으로 네팔을 품으며 바라보는 풍경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탄센은 네팔 같지 않은 곳이다. 터키에 가본 적이 없는 산토스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터키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단다. 분명, 길거리의 풍경들이 포카라나 치트완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돌을 하나하나 깔아서 옛날식으로 포장한 길이나 붉은 벽돌로 지은 2층집들도 다른 지역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풍겨낸다.
이 곳 사람들도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서 형편이 조금 나아 보이기도 했다. 이 작은 마을에 드럼, 전자기타 등 음악을 배우는 학원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물론, 그 학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겠지만 말이다.


산을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고, 마을의 길 자체가 산을 오르는 오르막길이다. 그리고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서 끝에 서게 되면 저 멀리 히말라야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마을의 중심부에 시원한 휴게소라는 의미의 'sital pati'에서>

<마을에 있는 어느 사원이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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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네팔이야기/Memory 2012/01/10 23:27 posted by 독고차

네팔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밤하늘에 빼곡히 가득차 있던 별들이다. 처음엔 넋을 잃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옥상에 누워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을 보며, 함께 있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술도 한잔 하면서.
그리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도 많이 빌었다. 하루에도 몇개씩 별똥별을 볼 수 있지만, 항상 떨어지는 순간을 놓치고, 떨어지고 나서 급하게 소원을 빌어서 인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이 많다.
그땐, 지겨울 만큼 별들을 보곤 했었다. 별을 봐도 그리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때 즈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고, 이제는 밤하늘에 빼곡하게 가득차 있던 별들이 너무 그립다.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으니,,
네팔에 도착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 몇번의 실패 끝에 산토스가 DSLR 카메라로 찍었던 별사진이 다행히 남아있어서 올려본다. 

<우리가 살던 집 옥상에서 찍은 노을 사진>
 
<치트완에서 밤하늘, 산토스가 DSLR로 노출을 엄청 주고 찍은 사진>


<옥상에서 생선이랑 감자를 구워 먹던 날, 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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