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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by 독고차 2018. 6. 2.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화성학을 함께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점을 찾았다. 검은색 표지의 화성학 책 위에 가로로 눕혀져 있던 하얀 표지의 책에 눈길이 갔다. 책 제목의 '파리'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그 책을 집어들게 했고, '피아노 공방'이라는 단어는 그 자리에 서서 저자의 소개와 서문을 찬찬히 읽어보게 만들었다.

저자는 파리에 살고 있는 미국인인데,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지만 여러 이유로 그 길로 계속해서 가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는 파리에서 우연히 동네의 피아노 공방을 알게 되었다. 그 공방을 통해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되고, 조그만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를 사고, 레슨을 받으며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된다.

내 머리속의 파리라는 이미지는 중세 유럽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가득차있고, 약간은 습하고 어두우며,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이다. 아마 어느 영화에서 프랑스 밤거리를 보면서 각인된 이미지일 것이다. 그 곳에서 운영되는 피아노 공방도 역시, 어둠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피아노 공방에서 일하는 뤼크를 비롯해, 조율사, 피아노 레슨 선생님 등, 그 곳에서의 피아노의 이야기와 사람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동네에 그러한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피아노를 매개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 피아노 공방을 찾긴 힘들지만, 사실 중고 피아노 매장이 파리의 피아노 공방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공간인 것 같다. 중고로 피아노를 매입해서 수리한 후, 다시 되파는 일. 하지만 대부분 무언가를 재창조하는 공방의 느낌보다는 신제품과 중고 제품의 판매와 유통의 역할에 더 치중되어 있는 것은 조금 아쉽다.

공방에서는 재창조되는 상품은 이전의 주인이 소중히 대하며 사용했던 흔적과 그것을 상품으로 재생산해내는 기술자의 노력이 차분하게 쌓여있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래야 애초에 중고를 사려고 했던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새상품처럼 도도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런 모습과 가게의 분위기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 할 것이다. 
피아노 공방에서 일하는 뤼크를 보면서 피아노를 수리하는 일과, 조율하는 일에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좋아하는 피아노를 업으로 끼고 살면서, 또 연주도 하면서 그렇게 살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책을 다 읽고 조율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조율 학원도 알아보고 낙원상가에 가서 중고 피아노도 덜컥 사버렸다.

저자가 뤼크의 피아노 공방을 통해서 열정에 불을 당겼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마음 속에 묵혀놓고 있던 피아노에 대한 열정에 불을 당긴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조율 공부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둘지도 모르겠지만, 피아노는 계속해서 칠 것이라는 확신은 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피아노를 살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동네에서 그런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하나 더 꾸게 되었다. 설령, 그런 공간을 만들 수는 없더라도, 늙어서도 피아노를 가까이하고 연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저자가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 연습에 대한 짧은 생각을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참고할만 하다.
손가락 기억을 하게 되면 망하는 것이다. 곡을 화성적으로 이해하고 익힌다면 어느 손가락으로 치더라도 중요하지 않다. 다른 손가락을 바꿔가면서도 연주가 된다.

먼저 곡의 구조를 외우고 이해하고, 코드진행에 따라 어떤 음들이 쓰였는지를 생각하면서 연습을 해야한다. 단순히 음표의 위치와 손가락을 외우면서 연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몇 주간 연습을 안하게 된다면, 곧 사라지게 될 결과물로, 지금껏 피아노 연습을 해오면서 경험해왔다.

내가 피아노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해주고, 또 아주 막연한 꿈을 하나 꾸게 만든 책이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 10점
사드 카하트 지음, 정영목 옮김/뿌리와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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