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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by 독고차 2018. 7. 21.
이념의 대립이 극심했고, 끔찍한 전쟁까지 치뤄야했던 아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푹 빠져읽게 되지만, 마지막엔 씁쓸함과 안타까움만이 남는다.

소설 속 정찬우는 과거 항일 투쟁을 했던 많은 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인민을 위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북쪽에 서게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당의 지령을 받고 고민할 여유도 없이 교육위원으로써 전쟁에 투입된다. 공산군이 점령한 지역을 다니며 사상 교육을 하며 남하하다가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남한에서 고립되어 버린다. 북으로 가지도 남으로 내려가지도 못하게 된 이들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다 결국 포로가 되고 형무소에 수감된다. 전쟁 때 생황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환경에서 거의 10년을 복역한 후, 고향땅을 밟게 되지만 가장 찬란해야할 청춘의 시간을 혹독한 시련으로 견디며 온몸이 망가진 후였다. 자유의 몸이 된지 10년이 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정찬우의 삶은 그의 후손에 의해 전해진 수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소설적인 요소가 섞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 정찬우의 삶이 그 시대에 그리 특별하지 않은 또다른 누군가의 삶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핍박에 저항하며 살아갔던 이들에게는 미국 역시, 또다른 일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인민을 위한 가치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사상이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권력에 눈이 먼 지도자와 이념을 표면으로 내세운 강대국들의 힘의 정치에 산산조각나고, 약하고 가엾은 사람들만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게 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볼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 세상에 옳거나 정당화될 수 있는 전쟁은 없다는 확신이 든다. 전쟁을 원한 적 없던 무고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 죽어가고,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끝까지 권세를 누리며 제 명을 다 살다가는 불공평한 세상이다.

한국 현대사의 한가운데에 내던져저 살아간 정찬우의 삶이 참 애처롭고 안타깝고 허무하다. 그 시대에 그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이런 아픈 역사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아픈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부해야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 박창섭처럼 평화로울 땐 평범한 이들이지만, 위기의 순간에 그들 깊숙히 흐르고 있는 의식이 색깔을 드러내게 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존엄과 도덕적인 타락을 겪지 않도록 평소에도 자기를 돌아보는 수양이 필요할 것 같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 10점
안재성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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