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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by 독고차 2018. 10. 7.

저자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을 열한 계단을 오르는 것에 비유해서, 자신이 겪어온 이야기를 전해준다. 하나하나의 계단을 오르는 과정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이상적인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제국주의에 의한 남미의 아픔을 어렴풋이나마 알고는 있었지만, 이상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언급되는 그들의 아픔이 짧은 문장들에도 불구하고 크게 와닿았다. 민족주의적인 저항과 더불어, 다 함께 잘살고자 했던 이상을 가슴에 품고, 또 행동으로 옮겼던 이들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체 게바라, 메레세데스 소사. 저자는 이상적인 인간을 말하면서 이들을 언급한다. 나는 살면서 이상적인 인간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당면한 과제를 수행하기에 바빴다. 이미 구조화된 시스템에 순응하며, 그 구조 안에서 잘 살려는 위한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행동했다. 당연히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지만, 그 너머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것이 꼭 시스템에 대한 투쟁일 필요는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로써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대한 이들이 무엇을 가슴에 품고, 어떻게 행동으로 보여왔는지, 그에 대한 식견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여행하는 삶의 태도는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을 조금 더 만나야 할 것 같다. 지금처럼 골방에 앉아 취미생활이나 즐기는 생활을 조금 줄이고,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의미 있는 교류가 필요함을 느꼈다.

죽음과 나에 대한 인식 부분도 어렵지만, 흥미로웠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내가 경험하고 있는 외부세계는 나와 분리된 객관적인 실체인가? 객관적인 외부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인식하는 방식으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결국은 모든 것은 내 마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양자역학의 내용이 떠올랐다. 미시의 세계에서는 내가 보는 행위에 의해서 양자의 운동이 바뀐다는 내용이었는데, 즉,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내가 존재함으로써, 그리고 봄으로써 상호 영향을 받은 상태로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것은 물리의 운동에 대한 내용이지만, 세상은 내가 인식하는 방식대로 존재한다는 이야기와 묘하게 겹쳐졌다.

저자는 11개의 계단을 오르며 느꼈던 고민과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결국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내용일 것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벗어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지식을 만나야 한다. 그런 외부 세계와의 충돌로 인해, 계속해서 나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공감이 많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사회, 국가, 종교, 가정, 학교, 직장이 요구하는 의무와 평가에 저항해야 한다. 그들이 당신에게 전문성을 강요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로만 당신을 평가하려 한다고 해서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그것이 전부인양 맹목적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사회와 국가는 당신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는 오직 당신의 노동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노동자로 살기 위해 이곳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열한 계단 - 10점
채사장 지음/웨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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